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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빛은 구석에서도 피어난다

수필가 김종걸의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

 

칠 년 전의 겨울이었다. 그날도 하얀 입김이 도로 위를 흩날리고 있었다. 복지시설의 문을 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웃음의 끝자락, 한 구석에 한 아이가 있었다.

 

“김창식(가명).”

그 아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모서리, 차가운 벽 밑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세상과 단절된 모습이었다. 그때마다 내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졌다. 그 어둠은 단지 한 아이의 그림자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한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그 시절 나는 현장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건씩 가정폭력, 실종 신고가 이어졌다. 수많은 기록 속에서 아이들의 이름은 숫자로만 남았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 뒤에는, 상처받은 한 생명이 있었다. 창식이네 가정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며 생계를 이어가는 장사꾼이었고, 집에 머무는 날보다 떠도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는 외로움과 분노에 짓눌려 술을 마시며 늘 취해있었다. 아이의 눈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남편에 대한 원망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끝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현장 조사를 위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아이에게 던진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살진 않았어.”

그 말 한마디에, 아이의 눈빛이 조용히 꺼졌다. 그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무릎 사이로 숨었다. 그 순간 느꼈다. 법의 테두리로 보호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현장 경찰의 임무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사건’이 아닌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현장은 언제나 법 이전의 인간을 마주하게 했다. 한 아이의 침묵 속에 수많은 어른의 무관심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창식의 사건을 단순한 업무로 넘길 수 없었다. 퇴근길에도, 휴일에도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시설을 찾아갔다. 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창식아, 세상은 널 미워하지 않아. 너는 잘못한 게 없어.”

“그저 조금 외로웠을 뿐이야.”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작은 눈동자 속에 아주 미세한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제복이 단순히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표식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 창식을 성당의 신부님께 부탁해 상담을 연결하고, 지역 기업인에게 지원받아 아이가 일을 배우도록 도왔다. 창식의 세상에 ‘믿을 만한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경찰로서 한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칠 년이 지났다. 나 또한 세월의 물결 속에서 제복을 벗었다. 폭염과 폭우로 힘들었던 계절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오면서 문득 문득 떠오른다. 내가 만난 수많은 얼굴 중에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이들이 궁금 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창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달 뒤, 뜻밖의 만남이 찾아왔다. 어느 날, 함께 봉사 활동을 하는 동료들의 모임 날이었다. 그곳에서 한 청년이 내 앞에 다가왔다. 낯익은 눈빛, 그러나 훨씬 단단해진 표정. 창식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두 팔로 끌어안았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경찰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세상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있었을 거예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등을 조용히 두드렸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받아들인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날 비로소 알았다. 경찰의 기록은 잊히지만, 경찰의 온기는 남는다는 것을.

 

퇴직 후 종종 후배 경찰관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보라.”

법의 잣대는 냉정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따뜻해야 한다. 공직자의 자리는 단순히 제도를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회의 가장 끝자락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크지 않다. 말 한마디, 시선 한 줄기 때로는 그저 침묵뿐이다. 그러나 그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 공직자의 감수성이자 책임이다.

창식의 어머니처럼 삶에 지쳐 아이를 밀어내는 사람, 창식의 아버지처럼 도망치는 어른, 그리고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이웃들….

그 누구도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 한 손을 잡기까지, 사회는 너무 오랜 시간을 망설였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현장’을 생각한다. 그 현장은 더 이상 사건 현장이 아니라, 인간의 현장이다. 공직자의 진정한 일터는 책상 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절망 속 한가운데에 있다.

 

이제 제복 대신 추억을 입고 산다. 순찰차 대신 골목길을 걷고, 사건기록 대신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세상 곳곳에는 여전히 ‘구석에 앉은 이들’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외로움의 자리들이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너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너를 보고 있다.”그것이 퇴직 경찰관으로, 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다.

 

현장 경찰로 근무하던 시절, 수많은 사건 속에서 나는 ‘인간’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늘 상처투성이였지만, 동시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공직자의 역할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위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라 믿는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묻는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구석에 빛이 되어주었는가.?”

그 질문이 내 공직 인생의 마지막 기록이다.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