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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묵주의 기도

수필가 김종걸 스물 한 번째 이야기

 

새벽녘,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 그칠 줄 모르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재우며 고요히 이어지고 있었다. 층층이 불빛을 밝히던 아파트 창들도 언제부턴가 하나둘 꺼지고, 어둠 속에서 오직 가로등 불빛만이 빗방울을 받아내며 서 있었다. 그런 새벽의 빗소리는, 왠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기도로 내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어제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의 피정(避靜)을 끝내고부터 어머니가 그리웠다. 십 년이 훌쩍 지났건만, 떠나신 그날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눈을 감으면, 새하얀 구름 위에서 환히 웃으시며 묵주를 매만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전에 어머니께서 그토록 의지하시던 묵주, 그 한 알 한 알에 깃든 사랑과 기도의 숨결이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묵주와 함께였다. 아침이면 창가에 앉아 묵주 알을 굴리며 하루의 평화를 빌고, 저녁이면 어둠 속에서도 촛불 같은 기도를 이어가셨다. 그 손길은 자식들을 위한 간절함으로 젖어 있었고, 그 마음은 하느님 앞에서 한 치의 숨김도 없이 내어놓는 순수함이었다. 내가 경찰관으로 현장을 누비며 위험 속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묻곤 하셨다.

 

“어제 시위 현장에 있지 않았니? 다치지는 않았니? 인제 그만 내려놓고 쉬면 안 되겠니?”

그러면서도 늘 묵주를 잡은 채 기도하셨다. 자식의 건강과 무사 귀환을 빌며, 어머니는 하루를 여셨고 또 하루를 닫으셨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큰 울타리였는지를. 돌이켜보니, 수많은 위험과 혼란의 순간마다 나를 감싸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바로 그 기도였음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좌우명은 단순했다.

 

“얻는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비울 줄 아는 것이다.”

젊은 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채우고 얻는 것이라 믿었으니.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그 말씀의 깊이를 조금은 깨닫는다. 비움이란 단순히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비우고, 원망을 비우고, 끝내 자기 자신마저 비워내는 일. 그렇게 남은 자리에 비로소 은총이 스며든다는 것을.

 

어머니는 묵주와 함께 삶을 비워내셨다.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작은 기쁨과 평화를 얻으셨다. 그 길의 일부라도 닮을 수 있을까. 아니, 닮고 싶은 마음에 새벽 빗소리를 들으며 기도한다.

 

어머니 !

지금 계신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한 자식이지만, 어머니의 기도처럼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기를 다짐합니다. 어머니, 그때 손에 꼭 쥐고 계시던 묵주를 이제 제 손에 건네주신 줄 압니다. 그 알마다 스며든 눈물과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삶을 기도의 걸음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어머니 !

기도란 결국 사랑이란 걸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드리는 이 작은 기도가 하늘에 닿아, 다시 어머니께로 향하길 소망합니다. 비 내리는 새벽은 곧 멈추겠지요. 햇살이 다시 찾아올 때 저는 어머니의 묵주를 손에 쥔 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언젠가 제 생의 끝자락에서도, 저 높은 곳에서 다시 어머니의 기도와 만나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제 기도를 받아주소서.

 

2025. 09. 28.

한국 카톨릭 문인협회 가을 피정(避靜)을 마치고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