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흰 눈은 보도블록 위에 슬픔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그토록 짧았던 가을은 쉽게 고개를 숙이면서 급격히 기온이 하강하고 찬바람과 함께 몸서리칠 만큼 낯선 기류를 타고 강추위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또한 뜬금없는 비상계엄령 선포와 이에 따른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탄핵을 외치며 추위와 싸우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 편에서는 탄핵 반대로 맞서고 있다. 여야 정치 집단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렇게 올겨울은 아주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신년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이 결심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한해를 계획하며 ‘올해는 정말로 달라질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결심의 시작은 늘 아름답다. 하지만 좌측 발목 골절환자인 나로서는 꽤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여전히 발목 골절 치료가 계속 진행 중이라서 몸은 여러모로 힘들지만,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는 대신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살아간다. 그로 인해 삶은 더 풍요롭게 느껴진다.
문득 oo 파출소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 생각 난다. 처음 파출소에 전입하자마자 관내 현황을 살펴보니 시골의 작은 면에서 발생하는 사고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고가 잦았다. 특히 야간 교통사고가 빈번했다. 먼저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덤프트럭과 보행자 사고 현장에 진출하여 면밀한 관찰로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사고 현장의 도로는 인도 없는 편도 1차선 도로였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웠다. 피해자인 보행자는 상·하의가 모두 어두운색 계통의 옷을 착용한 상태로 걷고 있었다. 덤프트럭 운전자의 진술은 도로가 어두워서 걷고 있는 보행자를 발견치 못해 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읍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마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던 보행자인 피해자 노인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야간 순찰 시간을 활용하여 관내 마을마다 취약 요소를 지도상에 표시하는 작업을 마친 후, 지리적 취약 요소가 빼곡히 적혀있는 현황도를 들고 사회 단체장 회의에 참석하여 취약 요소의 문제점과 대책을 설명했더니 일부 주민들은 취약 요소의 대책에 대하여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그렇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수시로 교통사고 및 음주 운전의 위험성에 대하여 동영상으로 교육을 계속했다. 또한 매일 아침 시작과 동시에 사회 단체장 및 회원들에게 치안 소식을 전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1년 동안 3만여통의 문자를 보냈더니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파출소장 문자 왜 안 보내는 거야”라고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당시에 마을 이장님들과 대화할 때 “어려운 점이나 불편한 일이 있을까요? 경찰관에게 바라는 사항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어렵고 불편한 점은 없단다. 불편한 점이 없다는 데도 불구하고 행정복지센터와 파출소 및 농협 협동조합, 각 사회단체에 건의하여 매월 1회 야간 합동 순찰을 제안했다.
야간 합동 순찰은 처음 관내 현황도에 적시된 취약 지점 위주로 각 기관구성원이 함께 모여 마을을 순찰하면서 범죄에 취약한 곳을 서로 찾아내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사실 범죄예방 위주로 야간 합동 순찰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큰 목표였다. 특히 이곳은 야간 교통사고가 112신고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많은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교통사고 예방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서 1년 동안 야간 합동 순찰을 계속 실시했다.
합동 순찰이 끝나면 순찰지역에서 노출된 문제점을 신속하게 조치했다. 특히 마을 보안등 및 가로등 설치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여 일명 ‘가로등 불 밝히기 운동’을 전개했다. 상가 밀집 지역에도 보안등을 설치하여 노상 방뇨를 억제하고 깨끗한 골목길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합동 순찰을 함께하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입구까지 보안등이 없는 곳은 어두워서 범죄에 취약하다는 점을 함께 공감하며 각 마을 실태조사를 통해서 어두운 곳에 보안등을 설치하여 마을 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일부 농민들은 보안등이 켜져 있으면 곡식이 익지 않는다고 보안등을 끄는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야간 순찰할 땐 늘 보안등 점등 여부를 점검하였다. 취약지역에 1년 동안 무려 100여개 넘는 보안등과 가로등을 설치했다. 당시 가로등 설치에 도움을 준 화성시 관계자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마을 경로당을 방문하여 교통사고 동영상 교육을 할 때마다 노인들을 상대로 야간에 외출할 때는 무조건 눈에 띄는 흰옷을 입도록 권유했다. 아울러 가로등이 없는 편도 1차선 도로에 인도가 없어 보행자가 도로를 통행하다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여 행정복지센터와 합동으로 인도 확보를 화성 시청에 건의했다. 그렇게 1년 동안 활동한 결과 교통사고는 현저하게 감소하였고, 범죄 발생 건수도 많이 줄었다. 당시에 주민 친화적 경찰 활동을 인정받아 화성시 노인회 등 많은 사회단체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
화성 서부 지역은 아직도 편도 1차선 도로에 가로등도 없으며,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는 인도가 없는 지역이 많다. 올해에는 이러한 낙후된 곳이 없도록 서둘러 찾아내어 104만 화성 특례시가 환하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아울러 현재 마을 입구마다 CCTV를 설치한 지역도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지역마다 실태조사를 통하여 CCTV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 일부 면에는 등록 외국인 수가 1000여명이 넘는 곳도 있다. 외국인 범죄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CCTV 설치와 어둡고 구석진 곳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보안등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선택의 기회를 맞이한다. 그 기회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일수록 신중해지게 마련이다. 누군가 어두운 곳에 촛불을 밝히려고 생각한다면 지금 실행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을 많이 할수록 생각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도 싫고, 불필요한 감정 낭비도 싫은데, 한번 시작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멈추지 않는다.
나도 경험했다. 1월에 파출소에 부임하자마자 ‘가로등 불 밝히기 운동’ 계획을 세웠지만 그 운동을 실행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한테 휘둘리는 내가 못마땅했고, 결국 실패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는 내가 비겁하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하지만 작심삼일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실패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성장하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작심삼일이 반복되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과정이라고.
2024.01.17
수필가 김종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