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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해 겨울

수필가 김종걸 일곱번째 이야기

 

 

밤의 끝자락, 곧 먼동이 터올 즈음, 세상은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부끼는 낙엽은 마른 언덕 잔디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고, 그해 겨울날의 기억은 소복이 피어난다.

그해 겨울날도 온 세상이 눈에 파묻혔다. 당시 함께 걷고 있던 강아지는 온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발자국을 찍었다. 천지가 순연(純然)한 빛으로 채워지고 눈발이 주위의 모든 소리마저 덮어 버리던 날,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었고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었다.

 

순백의 세계에 취했던 걸까. 새벽부터 눈길을 걷다가 넘어져 병원에서 30바늘이나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그러고도 간호사가 엉덩이에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 현장 근무할 때는 툭하면 다치곤 해서 시련이 많았지만, 퇴직 후 크게 다친 건 처음이었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눈 주변이 계속 부어올랐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숨이 콱콱 막혔다. 급히 다시 병원으로 내달렸다. 계속되는 통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디클로페낙(diclofenac) 부작용인 것 같다며 의사는 ‘잘못되면 죽을 수 있으니 더 힘들다고 느껴지면 큰 병원으로 즉시 옮겨야 한다.’라면서 준비를 서두르라고 한다. 아직은 숨 쉴 만하다고 했지만, 의사는 조금만 기다려 보고 서울대학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주사 부작용이 있다는 걸 왜 모르고 있었냐'면서 간호사와 의사가 합세해서 아내를 탓하면서 겁을 주었다. 당시 간호사는 주사를 놓기 전에 부작용 따윈 물어보지도 않았고, 의사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겁박으로 가슴이 콩알만 하게 타버린 아내에게 ‘이젠 조금 괜찮아졌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달랬지만, 그럴수록 아내는 안절부절못했다. 당시 아내의 안타까운 표정은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그러고는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자칫 황천길로 갈 뻔했던 순간을 맞고 보니 후회와 반성으로 눈물이 흐른 것이었다. ‘인생은 허무하다’라던 어른들의 말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이내 눈이 감기고 잠이 들었다. 2시간쯤 지나서 아내의 걱정하는 목소리와 간호사의 소리가 들렸다. 이젠 부어올랐던 눈 부위가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다고.

 

그날 펑펑 내린 눈이 온 동네를 흰 백색 눈 세계로 변모시켰다. 아파트 주민들은 넉가래로 눈을 치우고 아이들과 합세해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솔방울로 눈동자를 박고, 숯으로 콧날도 세웠다.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통원 치료를 시작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자 상처는 점점 아물면서 꿰맨 실밥도 풀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온난화 현상으로 한낮에 온도가 올라가면서 눈사람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더운 피의 유전자를 지니지 못한 눈사람은 얼굴이 뭉개지더니 눈동자로 박혔던 솔방울은 땅에 떨어지고, 콧날의 숯은 날아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눈사람의 목은 황새처럼 길어졌다. 점점 가늘어진 몸통 위로 소나무에서 잔가지가 떨어져 박혔고, 흩날리던 가랑잎도 날아와 붙어 있었다.

 

통원 치료를 끝내던 날, 민망할 정도로 추해진 눈사람은 기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면서 내 곁을 떠났다. 잠시 힘들게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기 직전까지 앓아본 사람은 안다. 육체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인간이란 그지없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삼 년이 흐른 요즈음, 눈사람이 떠난 그 자리엔 밤이면 찬 서리가 내리고 사위는 적막하다. 정적과 평온이 흐른다. 밤이 깊어져 갈수록 잠은 오지 않아 나도 모르게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었다. 남달리 뛰어나거나 기름진 삶을 바란 적도 없었건만, 그동안 시름과 근심이 잦았고 몸은 고단했다. 긴 세월 동안 현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지만, 정말 미련하다 싶을 만치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온 힘을 기울여 살다 보니 어느새 육십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에 이르렀다. 점점 소멸의 노을이 전신으로 번진다.

 

어느 날엔가는 필시 나도 눈사람처럼 홀로 낯선 길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귀결인 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어오는 것 모두가 애틋하다. 소슬한 바람 소리조차도 애처롭다. 이토록 인간이란 허약한 존재이지 않은가. 그러함에도 나의 기억 속에는 가족의 온기와 체취가 배어있는 거실의 식탁과 내 방의 기억들이 죽어라 그리움을 키운다. 이건 필경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터이다. 이런 날엔 내 심장의 구멍이 숭숭 뚫리도록 울고 싶어진다.

사방 어디라 할 곳 없이 낯설기만 했던 이곳에서 그해 겨울을 떠올리면, 늘 슬픈 감상에 젖곤 한다.

 

프로필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2019)

 

○ 작품집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 (공저, 2022)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하면서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서울특별시장 표창, 경찰청장,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