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탄에 오기 전 두 개의 건설사에 대한 깊은 인상이 남아 있다. 하나는 필자가 살았던 집을 시공한 건설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무관한 어느 대형 건설사이다. 전자는 중견 건설사로 브랜드는 그다지 인지도가 있지 않은 편이었다. 분양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꺼림칙했지만, 교묘한 과장광고와 입소문 마케팅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신축 공동주택에서 처음 열풍처럼 불기 시작한 입주 ‘예정자’ 모임은 전체 입주예정자 중 극소수의 조직으로 건설사를 휘둘렀고, 놀라운 것은 건설사가 거기에 휘둘렸다.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집에 분양받은 다수가 무관심한 동안 건설사는 그 소수에 휘둘리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듯 숱한 설계변경을 했고 마침내 오시공 미시공 투성이로 집을 준공했다. 원칙 없이 휘둘리는 동안 소수에게는 특혜가 갔고 다수는 피해를 보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건설에 대해 스스로 몰입하여 공부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대기업 건설사의 초청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스무살이 채 되지 않았다. 집에 대한 구매력이 없는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건설사는 자사의 홍보 갤러리로 필자를 초청하였고, 그곳에서 필자는 인문학 강연을 듣고 참여자와 소통하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 브랜드는 필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두 개의 건설사 중 전자는 실제로 시장에서 잊힌 브랜드가 되었고, 후자는 현재 대한민국 최상위권 건설회사가 되었다.
동탄 지역 주민으로서 보는 동탄2신도시 초대형 물류센터와 동탄1신도시 메타폴리스 2단계 부지 문제는 모두 건설과 관련이 있다. 건설은, 기업은, 도시는 어떤 마인드로 움직여야 하는가. 돌이켜보면 필자가 경험했던 두 개의 건설사는 극명하게 갈렸다. 첫 번째 건설사는 원칙이 없어 흔들렸고 혁신이 안 되어 퇴보했다. 두 번째 건설사는 미래를 보았다. 어린 나이의 잠재적 소비자라도 그가 언젠가 그 브랜드를 소비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과연 지금 동탄의 주요 부지에 투자하고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그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가.
민과 관의 문제를 함께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도시 개발에서 정부가 기업에 요구한 여러 공공기여는 한계가 있었다. ‘소셜 믹스(social mix)’를 실현하겠다고 건설사가 재건축 사업 등을 할 때 임대주택도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했지만 진정한 소셜 믹스가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소위 기부채납 방식으로 조성된 소공원 등이 주민에게 얼마나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공이 지역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정말 지역과 주민에게 필요한 것, 특히 미래에 필요한 것을 민간에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공공기여, 마지못해 해야 하는 공공기여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기업에게는 기업가적 정신이 더 요구된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대한 지출을 투자로 생각하고 그 투자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결하며 시장을 넓힐지 생각해야 한다. 초대형 물류센터 건립이 당장 이익이 된다고 해도 환경에 대한 고려가 문화, 관광, 교육 등 부가가치를 더 크게 창출하여 기업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더 큰 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규모 주택 공급이 당장은 남는 것 같아도 교육·문화에 대한 고려가 미래 일자리 창출 및 재투자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개발주체로서 ‘디벨로퍼(developer)’가 가지는 마인드가 도시와 경제를 다시 숨 쉬게 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에게 형식적인 기여를 의무화하기보다는 지역의 상황에 따라 혁신적인 기여를 협의하고 이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필자는 한 사람의 주민이자 소비자로서 ‘말할 수 없었다’. 오래 전 그 중견건설사의 문제를 알았다 해도 나이가 어린 주민의 고민은 당연히 묻힐 뿐이었다. 지금도 시민으로서 대안을 논의할 공간이 없다. 몇 개월 전 동탄 물류센터 문제에 관해 반대집회에 초청을 받아 함께 목소리를 냈지만 그 이후 여러 여건의 어려움 속에서 주민들도 큰 상처를 받고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친환경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할 만한 논의는 확장할 공간이 없다. 동탄 메타폴리스 2단계 부지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옆 홍사용 문화거리 활성화를 위한 주민협의체에서 수 년간 활동하고 있지만, 홍사용 문화거리에서 해당 부지까지 이어지는 곳에 관한 필자의 여러 구상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은 없다. 혁신은 그렇게 아직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이, 정부가, 기업이, 주민이 같이 도시를 혁신할 이야기를 나누고 실현할 공간은 진정 없는 것일까.
2025년 9월 30일
[바로, 곁에 백현빈]
- 조국혁신당 경기도당 청년위원장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화성특례시 제6기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전체위원장
- 화성특례시 문화자치 참여시민협의체 공동운영위원장
- 경기도 제5, 6기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 역임
- 서울의소리 "백현빈의 정면돌파" 전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