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4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수필가 김종걸 여덟번째 이야기

 

최근의 비상계엄 등 불안정한 대내외 정세는 차치하고, 개인적으로는 단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10월 말경 다친 발목 골절 때문에 지금은 재활치료를 하고 있고, 발목을 최대한 편안하게 하기 위해 목발에 온몸을 의지한 채 생활한다. 그래서일까. 공직 생활 34년, 은퇴 후 근엄했던 옛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발목 골절 사고 당시 초기에는 휠체어와 목발까지도 지참했던 터라 그때 비하면 지금은 좀 편해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나의 행동은 작은 일이라도 쉽게 여기지 않는다. 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다치지 않겠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매사 신중히 생활한다.

통원 치료차 자동차를 타고 병원 앞에 내린다고 해도 목발을 짚고 병원 입구까지 걷다 보면 그 짧은 거리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면서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 많은 땀을 흘린다. 매사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불편을 잠깐이나마 겪고 나서야 일상생활에서 늘 불편함을 겪고 있는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는 분야로서, 너무나 바빠만 보이는 의사 선생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을 경우에는 지지부진한 치료 과정에 불안함만 가중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나의 발목 골절 치료를 담당하신 경찰병원 김건중 과장님과 천상옥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 내내 모든 부분에 대하여 차분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부족함이나 불안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입원 병실에서는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과학적 체계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매일 점검하여 인간으로서 질 높은 삶을 유지해 주었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간호의 기본 이념을 철저히 실천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특히 오다예 간호사님, 최유리 간호사님, 이주혜 간호사님께서는 환자의 아주 작은 상태까지도 깊이 헤아려주는 마음 씀에 진심으로 감동하였다. 이분들 모두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누구나 좋은 마음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멀리 있어도 항상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좋은 인연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는지.

발목 골절 사고 당시 예기치 않게 불행을 맞닥뜨린 나에게 가끔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런데 그 질문에는 두 가지의 큰 맹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나 자신에게 일어난 발목 골절 사고를 처벌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의식중의 불행은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며, 나는 거기에서 벗어나 있을 거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야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원인을 도저히 알 수 없을 때는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숨죽이고 있던 죄책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건을 평소 자신이 지니고 있던 나쁜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처벌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나에게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라는 마음으로 평생 하느님이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은 나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한탄했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탄한 인생은 없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나면 험준한 산이 나올 수도 있고 때론 울퉁불퉁한 길이 있을 수도 있다. 다행히 큰 불행을 비켜 갈 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다. 그런 장애물을 극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거뜬히 큰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통원 치료를 하면서 목발에 의지하지만, 어떻게든 장애물을 넘으려 애쓰면서 좀 더 단단 해졌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또한 나를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족과 더불어 이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이미 익숙해서 감사할 줄 몰랐던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귀하게 되새기면서.

 

프로필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 (2016,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2019)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하면서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12월 07일 아침

한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