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에 ‘마을만들기 조례’가 제정된 지 어느덧 10여 년이 넘게 흘렀다. 그 이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좋은 동네 아카데미’는 현재 주민자치회의 주민총회와 의제 발굴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화성 마을만들기 조례가 만들어진 마을자치의 초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초록대학 등 농촌지역에서 시작된 다양한 마을 활동들이 주민자치위원회와 결합하면서, 화성은 제도와 마을자치 활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필자 역시 지역에서 마을활동을 이어가다 주민자치회에 합류한 이들 중 하나였다. 시로 승격하고 20년 동안 화성은 도시의 급속한 확장과 함께 육아, 교육, 돌봄, 복지, 재생, 다문화 등 사회문제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복잡해졌다. 지금의 행정의 역할만으로는 다양한 문제를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를 함께 해결하고 보충해주는 민간 시스템은 지역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작동해 주었다. 지난 20년간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 주민조직, 중간지원조직 등은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화성시의 제도와 정책은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로 이원화되어 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직접 계획을 세우고 주민총회를 통해 결
동탄에 오기 전 두 개의 건설사에 대한 깊은 인상이 남아 있다. 하나는 필자가 살았던 집을 시공한 건설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무관한 어느 대형 건설사이다. 전자는 중견 건설사로 브랜드는 그다지 인지도가 있지 않은 편이었다. 분양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꺼림칙했지만, 교묘한 과장광고와 입소문 마케팅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신축 공동주택에서 처음 열풍처럼 불기 시작한 입주 ‘예정자’ 모임은 전체 입주예정자 중 극소수의 조직으로 건설사를 휘둘렀고, 놀라운 것은 건설사가 거기에 휘둘렸다.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집에 분양받은 다수가 무관심한 동안 건설사는 그 소수에 휘둘리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듯 숱한 설계변경을 했고 마침내 오시공 미시공 투성이로 집을 준공했다. 원칙 없이 휘둘리는 동안 소수에게는 특혜가 갔고 다수는 피해를 보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건설에 대해 스스로 몰입하여 공부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대기업 건설사의 초청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스무살이 채 되지 않았다. 집에 대한 구매력이 없는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건설사는 자
화성특례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장이 민원인에게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논평을 내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일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선택하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하고 싶다. 우리 도시를 대표하는 시장이 백주대낮에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시민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가 됐다. 그러나 오늘 펜을 드는 이유는 사건 이후 발표된 화성특례시와 화성특례시의회의 입장문을 접하며, 시민으로서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첫째, ‘중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인대 파열에 전치 4주 진단은 ‘경상’ 이라는 표현을 쓴다. 시장님이 많이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중상이라는 입장문을 보고 의아했다. 둘째,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폭력 상황에 누구도 휘말릴 수도 있다. 피해자 잘못도 아니고,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진 시와 의회의 입장문 발표는 시민이 시장 및 공직자를 걱정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시장은 든든하게 시민을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시민이 시장 걱정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셋째, 입장문에는 ‘테러’라는 표현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처음 공동체를 만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마을도서관 작은 모임에서 시작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해보자고 내딛은 발걸음이였습니다 그동안 마을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피어났습니다. 10년의 시간 동안 마을 안에서 완성된 답을 찾기보다는 늘 새로운 가능성을 묻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는 물음보다 “무엇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앞세우며, 서로의 목소리를 모아 오늘의 자리까지 나아왔습니다. 이 물음과 대화가 곧 공동체의 나침반이었고, 다시 길을 찾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생활 속의 장면들입니다. 마을 도서관에서 즐긴 아이들의 모습들, 마을 회관에서 진지하게 오갔던 이야기들, 마을 축제 마당에서 나눈 어르신들의 작은 웃음, 마을공동체 운영자들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던 크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 서로를 지탱하는 대화가 되었고,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란 결국 이런 평범한 일상 위에서 서서히 자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마을공동체의 진정한 힘은 눈에 띄는 결과 그 위에 선 관계를 지켜내는 일상에 있습
화성시는 올해 특례시로 승격했다.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 도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반려문화 정책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특례시답지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남양읍 ‘남양동물보호센터’ 논란이다. 원래 실외체육시설로 승인된 부지는 불과 2년 만에 동물보호소로 용도 변경됐다. 이 때문에 화성시 행정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또한, 필자가 유기동물 보호 정책 전반이 부실하다는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2023년 5월~9월, 화성시는 약 3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직영 보호소 설립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1년 넘게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2025년 9월 아직까지도 직영보호소 설립은 지지부진하다. 그 사이 동물을 사랑하는 화성특례시민과 동물보호단체는 스스로 나서 서명운동을 벌이며 직영 보호소 설립을 촉구해 왔다. 이는 행정이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고, 역할을 방기한 결과다. 현 남양보호소의 운영 실태는 시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입양을 위해 방문한 시민이 시설의 열악한 관리 상태에 충격을 받고, 결국 타 지역 보호소를 선택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동물 복지를 넘어 시민 정서에도 큰 상처를 남
9월 24일, 화성특례시 환경국 회의실에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이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다. 구두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 한강유역환경청과 화성특례시가 오는 12월까지 침출수 처리와 사후관리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주곡리 매립장은 우리나라 1호 지정폐기물 매립장으로, 2024년 법원 판결 이후 사후관리 주체가 법적으로 부재한 상태다. 침출수는 법적으로 2m 이하로 관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 공백 탓에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환경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곳이 전국 1호 지정 폐기물 매립장이라는 상징성이다. 이번 협의 과정은 앞으로 유사한 사례에 적용될 현명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제도적 보완을 마련한다면, 주곡리의 갈등은 전국의 다른 사후관리 문제를 예방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화성특례시가 땅의 소유주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짐을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국비 지원을 통해 환경부와 화성특례시가 협력해 제도적 공백을 메우고, 주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12월까지 이어질 협의가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
도시는 커졌지만, 마음은 작아져 갔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로움을 딛고 다시 모였고, 흩어진 삶을 이어내 공동체의 길을 열었습니다. 올해, 화성은 특례시로 승격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합니다. 동시에 마을공동체 10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함께할 때, 미래는 열린다.” 2025년, 마을 활동가들이 모여 마을만들기화성시민네트워크 (화성마을넷) 을 출범시키고, 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함께 걸어온 지 꼭 10년이 됩니다. 작은 불씨로 시작된 길은 이제 역사가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 불씨가 타올라 새로운 빛을 열어가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마을공동체는 우리 삶을 바꾸어왔습니다. “서로 스며들고 함께 물들며 실천하는 마을공동체”라는 비전 아래 주민의 역량은 강화되었고, 주인이 되는 마을을 만들어냈습니다. 생활문화 공간이 늘어나며 다양한 만남이 가능해졌고,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은 조금 더 단단히 지켜졌습니다. 보행권이 보장된 안전한 길 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이웃의 따뜻한 손길은 홀로 사는 노인의 저녁을 밝혔습니다. 작은 회의에서 시작된 대화가 마을의 문화를 바꾸었고, 주민의 지혜가 모여 마을의 문제를 풀어냈습니
화성특례시는 최근 화성예술의전당 무대음향 장비 논란과 관련해 형사·민사 소송 가능성을 언급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매체에 정정보도 요청이나 반론 보도를 요구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전체를 향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취재 지원자료를 배포한 방식은 지방정부의 대응 방식으로 적절치 않다. 더구나 9월 22일 오전 10시에는 화성특례시의회 김종복 문화복지위원장의 ‘문화예술의전당 무대 음향 장치 특정 장비 의혹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예고하고 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전에 배포된 이번 취재지원자료는 자칫 언론의 정당한 문제 제기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지방정부의 언론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 특정 기사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언론사를 대상으로 절차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언론 전반을 향한 법적 조치 거론은 불필요한 논란을 키울 뿐 아니라, 공공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차분하고 성실한 설명으로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과 지방정부는 감시자이자 동반자다. 갈등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마을이란 곧 사람이었다.” 이 단순한 진실을 확인하며, 화성시 마을공동체가 걸어온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지난 10년은 행정의 지원과 시민의 참여가 어우러져, 마을이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사람과 관계의 터전으로 자리 잡아온 시간이었다. 시작은 소박했다. 골목길을 함께 쓸고,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나누고, 아파트 화단을 가꾸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이 모여 돌봄이 되고, 배움이 되고, 축제가 되고, 연대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주민은 마을의 주인공으로 성장했다. 마을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약방의 감초처럼, 소금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서로를 이어주고, 위기 앞에서 버티게 하며, 일상의 균형을 지탱하는 힘이 바로 마을공동체다. 10년 동안 화성시 마을공동체는 수많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아이들과 어르신이 함께한 돌봄, 주민이 직접 기획한 축제, 사회적경제와 마을기업의 도전, 그리고 마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손길.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오늘의 10년을 완성했다.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의견이 부딪히고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 지칠 때도
얼마 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필자가 지역에서 평소 알던 사람을 통해 연락처를 받아 전화했다고 한다. 지역의 현안에 대해 고민이 있는데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고민이 되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연락할까 생각하고, 꽉 차 있는 일정에서 따로 시간을 마련했다. 한 시간 남짓의 대화에서 그 주민은 수많은 자료를 갖고 나와 설명했다. 이걸 알면 박사급이 될 거라고, 이미 박사과정을 마쳐가는 필자 앞에서 긴 시간 강의(?)를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실현이 불가능한 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질문했다. “선생님, 해결을 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민원 넣는 행위 자체로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을지요?” 그 주민은 본인에게 이미 답이 다 있으니 걱정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필요한 것일까. 수많은 공공기관을 움직이고 주민의 힘을 모아야 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이를 위해서는 정당과 같은 정치 조직에서 활동하며 함께 뜻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방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보였다. 필자를 어떻게든 ‘소모’하기만 하면 그만이겠구나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