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역에서 한 연극 공연을 보러 갔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극단 대표의 연극이며 지역에서도 꼭 한 번 진행하기를 바랐던 공연인지라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였다. 공연 도중 공연장의 시스템이 갑작스레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5분 정도 시간 안에 복구했지만, 지역에 공연을 유치하기를 바라며 지역 자랑도 했던 필자로서는 괜스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의 공연예술이 아직 더 구체적인 정교함이 필요함을 느꼈다. 분명 해당 공연장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상당히 최신 장비를 갖추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크게 인정받은 곳이다. 하지만 그 공연 후 극단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너도나도 문화시설을 늘리고는 있지만, 지역 문화 재단 등 전문성이 있는 기관의 소관이 아닌 상당수 시설은 전문 인력 없이 단순히 유지만 되는 경우도 많으며 그런 상황에서 고도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 조성 초기의 상태에서 나아지지 못하고 퇴보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행정과 문화기술을 전담할 인력과 인프라 자체가 더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우리의 공연예술과 문화 전반에 새로운 도약이 있어야 앞으로 시민을 더 만족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대형 공연장은 좀 더 일상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이번에 새로 조성된 공연 특화 전문 공연장인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경우 저녁 공연 후 귀가할 대중교통 노선이 거의 없어 서울까지 몇 배의 요금을 더 내며 택시를 타는 관객들이 많다고 한다. 영종도는 미단시티를 비롯해 아직도 개발이 지연되거나 빈 곳이 많은 상황이다. 공연장 하나 크게 짓고 귀갓길을 쩔쩔매게 만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영종도 전체에 한류와 관광 문화가 흐르게 할 방법은 없을까. 내년이면 조성될 화성특례시의 예술의전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관 기념 기획 공연을 넘어 도시 속에서 앞으로 어떤 콘텐츠로 채워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생활권 공원이자 대표적 문화공원이 될 보타닉가든 화성과 연계한 지속 가능한 공연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시민의 생활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 있더라도 평상시 한가람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 등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 예술의전당의 소프트웨어를 참고할 만하다. 이와 함께 서울 도봉구 창동에 조성되는 서울아레나처럼 공연장과 과학관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마을처럼 이어져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하드웨어 등도 전국적으로 참고할 만하다.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김포의 아트빌리지처럼 다양한 문화시설이 한옥마을처럼 이어져 있는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 이처럼 대형 문화시설은 생활권과 유, 무형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중소 공연장은 활성화와 관리가 문제이다. 여러 도시에서 야외 공연장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공연예술인의 시각에서 보면 최소한의 인프라도 미비한 채 단지 데크 무대 정도만 조성해 놓은 일도 있다. 지역에서는 소음을 이유로 야외 공연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만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중소 규모의 실내 공연장이 생활권 곳곳에 늘어나야 한다. 소극장 하면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로’라는 이름 자체를 생각해 볼 때, 대학로 소극장이 반드시 서울 혜화역 근처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수많은 대학 앞 ‘대학로’들에, 일상 공간 사이사이에 작은 공연장이 확산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는 민간을 중심으로 하되 공공에서 전문성 강화 등에 대해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중소 공연장이 활성화되고 공연장 유형별로 다양한 예술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미래에는 소수의 중대형 공연장을 놓고 예술가나 예술단체가 과도한 대관 경쟁을 하거나 시민이 공연장까지 가기 너무 멀어서 포기하는 일들이 줄어들 것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낯섦의 기쁨’을 만난다. 일상 속으로 찾아가 일상의 이야기를 하되 그 화법은 전혀 다른, 음악과 미술과 무용과 문학과 영화와 건축 등으로 말하는 또 다른 공간, 그런 곳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낯선 즐거움의 공간이다. 이제 시민은 문화시민으로서 찾아갈 준비가 되었다. 문화 환경이 좀 더 다가와야 한다. 시설의 수를 늘리는 것과 더불어 콘텐츠의 연결과 일상 속 시설 활성화를 함께 이뤄야 한다. 진정한 창의 도시는 일상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