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에 세웠던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화(禍)가 난다. 화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개체의 불꽃이다. 사소한 일에 쉽게 정화되기도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살아오면서 상대의 태도 때문에 화(禍)가 나는 일이 많아진다.
엊그제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그날은 친구의 외아들이 사랑하는 여인과 인생의 문턱을 넘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호텔 결혼식장에서 본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예식에 집중해야 할 시간임에도 식장 안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예식이 무르익어 가는 시간임에도 서로 담소만 즐기는 이들도 있었으며, 예식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식사를 재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가 생애 최초로 아들 결혼식이라면서 초대한 자리였는데 축하하러 온 것인지, 담소하러 온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울러 oo 대학원 수료식 및 시상식이 문득 떠올랐다. 그날 역시 몇몇 이들의 무신경한 태도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진행자는 정성을 다해서 행사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행사와는 아랑곳없이 옆에 있는 이들과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학교를 사랑하는 우리는 지식과 언어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은 단지 교육의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oo 대학원 수료식은 단지 시간이 흘러서 수료하는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쓰고, 함께 배우며,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공동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학교의 품격만큼이나 삶의 품위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난 5월, 대법원 공직 선거법 파기환송으로 국회에 출석한 oo 대법관은 사건 결론 여하를 떠나 최고 법원의 판결과 법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는 법원과 법관은 무조건 시민의 '존중'을 받을만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태도가 깔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오만한 태도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존중이라는 것은 그럴만한 행동을 했을 때 남들이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존중받기는커녕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비난받을 행위를 해놓고서 존중을 요구하는 태도는 법관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인 걸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징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을 사법 귀족이라고 여기는가 싶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법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아닐까?
10 년 전 우리의 패션 흐름은 ‘무심한 듯 우아한 자세'였다. 신경 쓰지 않은 듯, ‘어쩐지’ 멋져 보여야 진짜 멋쟁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생에서 돈이나 주식, 명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이며, 멋쟁이의 기준이다. 패션 디자이너 캘빈 리처드 클라인은 1982년 여성의 의류 데일리 인터뷰에서 “우리가 파는 것은 하나의 태도(attitude)”라고 말했다. 이는 비싼 옷보다도 태도가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은 역설적으로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철학적 경험임을 의미한다. 돈의 위력이 강해질수록 캘빈 클라인이 말한 것은 중요해진다. 돈 많은 티를 내면 ‘태도(attitude)’가 없는 천박한 스타일로 평가 절하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장 동료, 친구, 지인 등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분노가 일기도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상대가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라 그들을 거울삼아 나를 세심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삶의 품격은 누군가에게 어떤 태도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서로 소통이 안 되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보충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빛내는 자리에 함께했을 때는 더 세심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5년 6월 29일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