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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능소화(凌霄花) 아래서

수필가 김종걸의 서른 한 번 째 이야기

 

해마다 이맘때면 교정의 낡은 담장 위로 주홍빛 폭포가 쏟아진다.

“능소화(凌霄花).”

하늘을 능멸할 만큼 붉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지만, 내게 이 꽃은 늘 다른 이름으로 남아 있다. 세월의 벽을 타고 끝내 빛바래지 않은 한 시절의 흔적.

햇살에 번지는 꽃잎의 잎맥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 얇은 결 아래에서 오래전 손바닥에 쥐었던 돌의 서늘한 감촉이 되살아난다. 머리칼은 바래고 계절은 수없이 지나갔지만, 어떤 기억은 꽃처럼 오래 남는다.

젊은 날의 나는 바람보다 거칠었다. 교복 속 어깨에는 늘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얹혀 있었고, 상급학교를 향한 문은 날마다 조금씩 높아졌다. 누군가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청춘의 하늘은 유난히 잿빛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의 학교는 숫자만 가르치지 않았다. 성적보다 사람을 먼저 보라고 했던 스승의 목소리, 타인의 슬픔 앞에서 잠시 멈추는 법, 다정함이 결코 약함이 아니라는 가르침. 그 작은 문장들이 불안으로 메말라가던 마음의 흙을 적셔주었다.

하지만 교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은 다시 회색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호미질 소리는 저녁노을이 다 질 때까지 들리지 않았고, 빈 양재기 곁에 엎드려 잠든 강아지만이 나를 맞았다. 사춘기와 결핍은 서로 닮아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서러움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나는 혼자 산으로 갔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주워들었다. 손바닥에 박히는 모서리가 아플수록 마음은 이상하게 잠잠해졌다. 허공을 향해 힘껏 던진 돌은 바위를 치고 부서졌다.

“탁.”

그리고 다시,

“탁.”

그 짧은 파열음은 어린 내가 세상과 나누던 유일한 대화였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깨뜨리려 했던 것이 세상이 아니라, 견디지 못하던 내 안의 울음이었다는 것을.

세월은 묘하다. 그날 부서진 돌들은 어느새 성실이 되었고, 눈물은 인내가 되었다. 상처는 오래 남았지만 방향을 잃지 않았다. 나는 단단해졌고 동시에 조금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한결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다.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오래 흔들린 끝에 겨우 중심을 찾았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 산에 오른다. 나무들은 더 자라 하늘을 가리고, 길은 오래된 발자국을 품고 있다. 눈을 감으면 저만치 어린 내가 보인다. 여전히 돌을 쥐고 있지만 예전만큼 세게 던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말없이 손을 펴서 돌 대신 꽃 한 송이를 쥐여준다.

 

능소화는 이상한 꽃이다. 천천히 시들어 무너지지 않는다. 가장 붉은 순간, 꽃송이째 스스로 몸을 놓는다. 오래 바라보다 문득 알게 되었다. 청춘은 상처 없이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라, 가장 뜨겁게 피었다가 가장 정직하게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 나는 돌 대신 꽃을 바라본다.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건네는 작은 아름다움을 오래 받아 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능소화 아래 선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문득 발치에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본다. 한때 돌을 쥐고 울먹이던 소년의 온기가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다. 처음에는 담장 위에서 타오르던 꽃이었는데, 끝내 내 손바닥 안으로 내려와 있었다.

 

 

◀ 김 종 걸 ▶

○ 격 월간지 〈그린에세이〉 신인상으로 등단

○ 작품집

수필집 : 〈울어도 괜찮아〉(2024)

공 저 : 〈언론이 선정한 한국의 명 수필〉(2022)